몸과 일상 사이,
모비닥 건강 매거진

피검사의 '정상'은 누가 정했을까?

건강한 사람도 '비정상'이 나오는 이유

건강검진 결과지를 받아 보면 수치 옆에 참고치가 적혀 있고, 그 범위를 벗어난 항목에는 H나 L 같은 표시가 붙어 있습니다. 진료실에서도 결과지에 붙은 H 하나 때문에 걱정을 안고 오시는 분들을 자주 만납니다.

그런데 이 참고치, 즉 정상 범위는 과연 누가, 어떻게 정한 것일까요? 이것을 알고 나면 결과지를 보는 눈이 조금 달라집니다.

'정상'이라는 말은 누가 만들었을까요?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방식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1969년 핀란드의 그래스벡 교수는 '정상치'라는 말 대신 '참고치'라는 말을 쓰자고 제안했습니다. 건강은 상대적인 것이어서, 어떤 기준에서는 아픈 사람이 다른 기준에서는 건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상'이라고 단정하기보다 '어떤 사람들을 기준으로 잰 값'이라고 부르자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결과지에 '정상치'가 아니라 '참고치'라고 적혀 있는 경우가 많은 이유입니다.

이후 국제임상화학연맹이 이 참고치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를 국제 권고안으로 정리했고, 지금 우리가 받는 결과지의 정상 범위도 대부분 이 방법을 따르고 있습니다.

정상 범위는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대부분의 피검사 정상 범위는 생각보다 단순한 방법으로 만들어집니다.

먼저 특별한 병이 없는 건강한 사람들을 모아 검사를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낮은 순서부터 높은 순서로 줄을 세운 다음, 가장 낮은 2.5%와 가장 높은 2.5%를 잘라 냅니다. 남은 가운데 95%의 범위를 정상 범위로 정하는 것입니다.

국제적인 권고안에서는 이렇게 정상 범위를 정하려면 성별이나 나이 같은 집단마다 최소 120명 이상의 건강한 사람을 검사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모든 검사실이 이렇게 직접 정상 범위를 만들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많은 검사실이 검사 장비를 만든 회사나 교과서, 다른 기관에서 정한 범위를 가져와 쓰고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도 '비정상'이 나옵니다

이 방법에는 한 가지 피할 수 없는 결과가 따라옵니다. 건강한 사람의 95%만 정상 범위 안에 들어오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건강한 사람이라도 20명 중 1명은 '비정상'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아픈 것이 아니라, 정상 범위를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검사 항목이 많아지면 이야기가 더 커집니다. 서로 관계가 없는 검사 20가지를 받는다고 해 봅시다. 각각의 검사에서 정상이 나올 확률이 95%라면, 20가지 모두 정상이 나올 확률은 0.95를 20번 곱한 값, 약 36%입니다. 다시 말해 아무 병이 없는 건강한 사람도 열 명 중 여섯 명 이상은 결과지 어딘가에 H나 L 표시를 하나쯤 받게 됩니다.

그래서 수치가 정상 범위를 조금 벗어났다고 해서 바로 병이 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얼마나 벗어났는지, 다른 검사와 함께 보았을 때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지난 검사와 비교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함께 봐야 합니다.

모든 기준이 같은 방식으로 정해진 것은 아닙니다

다만 모든 피검사 기준이 이렇게 가운데 95%로 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일부 항목은 건강한 사람의 분포가 아니라, 병이 생길 위험이 커지는 지점을 기준으로 정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혈당입니다. 우리나라 국가건강검진에서는 공복혈당이 100mg/dL 미만이면 정상, 100~125mg/dL이면 공복혈당장애, 126mg/dL 이상이면 당뇨병을 의심합니다. 여기서 126이라는 숫자는 건강한 사람들의 분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이 수치를 넘어서면서 당뇨병의 합병증인 망막병증이 눈에 띄게 늘어난다는 연구들을 근거로 정한 것입니다.

혈압이나 콜레스테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항목의 기준은 '건강한 사람들이 보통 이 정도'라는 뜻이 아니라, '이 선을 넘으면 심장이나 뇌혈관에 병이 생길 위험이 커진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검사실마다 기준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또 하나 알아 두면 좋은 것은, 같은 항목이라도 병원이나 검사실에 따라 정상 범위가 조금씩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검사 장비와 시약, 측정 방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측정 방법이 국제적으로 통일되어 어느 검사실에서 재든 같은 값이 나오도록 맞춰진 항목은 콜레스테롤, 크레아티닌, 당화혈색소 정도로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과지를 볼 때 숫자 하나보다 같은 병원에서 받은 검사 결과를 해마다 비교해 보는 것을 권합니다. 같은 기준으로 잰 내 수치가 어느 쪽으로 움직이고 있는지가, 한 번의 H나 L 표시보다 더 많은 것을 알려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정리하면

결국 피검사의 정상 범위에는 두 가지가 섞여 있습니다. 하나는 건강한 사람 95%가 들어오는 통계적인 범위이고, 다른 하나는 병의 위험이 커지기 전까지의 선입니다. 어느 쪽이든 '정상'은 지금 병이라고 부를 정도는 아니라는 뜻이지, 내 몸이 가장 좋은 상태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정상 범위 안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모두 똑같이 건강한 걸까요? 다음 글에서는 정상 범위 안에서도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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