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이면 다 같은 정상일까?
정상 범위 안에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건강검진에서 두 사람이 간수치 결과를 받았다고 해 봅시다. 한 사람의 ALT는 15, 다른 사람은 38입니다. 정상 범위가 40까지라면 두 사람의 결과지에는 모두 '정상'이라고 적힙니다.
그렇다면 이 두 사람은 똑같이 건강한 걸까요? 지난 글에서 정상 범위는 병이라고 부를 정도는 아니라는 뜻이지, 가장 좋은 상태라는 뜻은 아니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피검사의 '정상'은 누가 정했을까?) 오늘은 정상 범위 안에서도 실제로 차이가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정상인데 위험은 9배
이 질문에 가장 잘 답해 주는 연구 중 하나는 우리나라에서 나왔습니다. 2004년 연세대 연구팀은 의료보험 자료를 이용해 35~59세 성인 약 14만 명을 8년 동안 추적하면서, 처음 잰 간수치와 이후 간질환으로 사망한 사람들의 관계를 분석했습니다. 당시 간수치의 정상 상한은 40 정도였습니다.
결과를 보면 나이와 음주, 흡연, 체중 등의 영향을 보정한 뒤에도, 남성의 경우 ALT가 20 미만인 사람에 비해 20~29인 사람은 간질환으로 사망할 위험이 2.9배, 30~39인 사람은 9.5배 높았습니다. 여성도 20~29에서 3.8배 높았습니다. 모두 결과지에는 '정상'으로 나왔을 사람들입니다.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면, ALT 15인 사람과 38인 사람은 같은 '정상'을 받았지만 간질환으로 사망할 위험은 크게 다를 수 있다는 뜻입니다.
혈당과 혈압도 마찬가지입니다
혈당도 비슷합니다. 이스라엘에서 공복혈당이 100 미만으로 모두 정상인 젊은 남성 1만 3천여 명을 추적한 연구에서는, 공복혈당이 87 정도부터 나중에 당뇨병이 생길 위험이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공복혈당이 91~99로 정상 범위의 위쪽에 있으면서 비만이 함께 있는 사람은, 공복혈당이 낮고 체중이 정상인 사람보다 당뇨병 위험이 8배 이상 높았습니다.
혈압은 더 분명합니다. 61개 연구, 약 100만 명의 자료를 모아 분석한 결과에서는 혈압 115/75부터 시작해 혈압이 20/10mmHg 오를 때마다 뇌졸중과 심장병으로 사망할 위험이 두 배씩 높아졌습니다. 정상 혈압이라고 부르는 120/80 아래에서도, 혈압이 낮은 쪽일수록 위험이 낮았다는 뜻입니다.
하나씩 보다 묶어서 보면 더 잘 보입니다
피검사 하나하나는 작은 차이처럼 보여도, 여러 개를 함께 보면 차이가 더 뚜렷해집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연구도 있었습니다. 2017년 연세대 지선하 교수 연구팀은 앞의 간수치 연구와는 별개로, 건강검진을 받은 우리나라 사람 약 56만 명의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 간수치, 허리둘레, 폐 기능 등 15가지 검사 결과를 묶어 각자의 생물학적 나이를 계산하고, 최대 17년 동안 추적했습니다.
그 결과 생물학적 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1살 많을 때마다 사망 위험이 남성은 17%, 여성은 13% 높았습니다. 특히 50대 남성 가운데 생물학적 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5살 이상 많은 사람은, 차이가 2살 미만인 사람보다 사망 위험이 4.8배 높았습니다. 15년 동안 생존한 비율도 2살 미만인 사람은 93%였지만, 5살 이상 많은 사람은 70%에 그쳤습니다.
1편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같은 나이라도 몸의 나이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건강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피검사의 '정상'이라는 글자만으로는 이 차이가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낮을수록 좋은 걸까요?
여기서 두 가지는 꼭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첫째, 모든 수치가 낮을수록 좋은 것은 아닙니다. 체중이나 혈압처럼 너무 낮아도 오히려 위험이 올라가는 항목들이 있습니다. 항목마다 좋은 방향과 적당한 범위가 다르기 때문에, 숫자 하나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둘째, 이런 연구들은 정상 범위 안에서 수치가 높은 사람의 위험이 높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지, 약을 써서 정상인 수치를 더 낮추면 위험이 줄어든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은 아닙니다. 정상 범위 안에 있는 혈당이나 간수치를 약으로 더 낮추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만 체중을 줄이고, 운동하고, 술을 줄이는 것처럼 생활을 바꾸면서 수치가 좋은 쪽으로 움직인다면, 그것은 몸이 실제로 좋아지고 있다는 신호로 볼 수 있습니다.
결과지를 어떻게 보면 좋을까요?
그래서 건강검진 결과지를 받으면 내 수치가 정상인지만 보지 말고, 정상 범위 안에서 어디쯤에 있는지를 한번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같은 정상이라도 범위의 아래쪽인지, 위쪽 끝에 가까운지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 수치가 작년과 비교해 어느 쪽으로 움직이고 있는지를 함께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상'이라는 글자 뒤에 숨어 있는 차이를 읽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렇게 여러 검사 결과를 묶어 몸의 나이를 계산하는 방법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